인공지능(AI) 혁신에 발맞춘 대형 인프라성 투자와 첨단산업 전반의 구조 개편이 맞물리면서 국내 인수합병(M&A) 시장 규모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단순 재무적 투자를 넘어 AI 데이터센터 같은 핵심 자산을 선점하려는 조 단위 빅딜이 잇따라 터진 영향으로, 올해 3분기 누적 거래액은 이미 지난해 연간 전체 규모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금리 인상기에 자금 조달 부담이 더 커지기 전 거래를 신속히 마무리 지으려는 ‘딜 클로징’ 속도전이 치열해진 점도 거래 규모 급증에 불을 지폈다. 인수금융 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매수·매도자 모두 서둘러 잔금을 치르고 계약을 종결짓는 움직임이 나타난 결과다.
2일 서울경제신문이 집계한 시그널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완료 기준 국내 M&A 누적 거래액은 총 62조 53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거래액인 61조 3989억 원을 단 9개월 만에 넘어선 수치다.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체결됐던 주요 주식매매계약(SPA) 거래들이 3분기 들어 속속 마침표를 찍었다. 3분기 단일 분기로만 한정해도 완료 기준 M&A 거래액은 1조 원에 육박하며 전년 동기(10조 9237억 원) 대비 37% 가까이 급증했다.
AI가 촉발한 산업 재편 바람과 미래 신사업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M&A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SK텔레콤은 올 8월 SK호라이즌을 분할 신설하고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IMM인베스트먼트·스톤브릿지 컨소시엄으로부터 총 3조 8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7월 글로벌 펩타이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폴리펩타이드그룹을 약 2조 70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거래량 증가를 이끈 또 다른 배경으로 금리 인상에 따른 자금 조달 리스크 차단도 꼽힌다. 한국은행의 연속적인 기준금리 인상과 글로벌 금리 상승 여파로 인수금융 금리가 선순위 기준 7% 선까지 치솟으면서 차입 비용이 더 상승하거나 대출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지기 전에 거래를 조속히 종결짓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금리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과 투자 심리 위축 우려가 커지자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 조건이 맞을 때 서둘러 잔금을 치른 것이다. 실제 3분기 중 칼라일의 청호나이스 인수(1조 원)를 비롯해 KG그룹의 케이카 인수(7500억 원) 등 중대형 거래가 연이어 마침표를 찍었다.
이르면 연내 종결이 예정된 다른 거래도 줄줄이 대기 중이라 올해 전체 M&A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두산의 SK실트론 인수(2조 3000억 원)와 15조 원 규모의 두나무·네이버파이낸셜 합병도 딜 클로징을 바라보고 있다.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이 1조 3000억 원에 추진 중인 롯데렌탈 인수, 대한항공의 대한항공씨앤디서비스 인수(7500억 원), 네이버가 엔비디아를 상대로 진행하는 1조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등도 업계를 달굴 굵직한 관전 포인트다.
소수의 조 단위 빅딜이 전체 실적을 좌우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면서 자문 시장 판도도 요동쳤다. 금융자문 부문에서는 딜로이트안진이 2조 442억 원 규모의 거래를 자문하며 삼일PwC를 제치고 선두를 차지했다. 상반기 선두였던 삼일PwC는 가장 많은 15건(1조 7028억 원)의 거래를 소화하며 2위를 차지했고 청호나이스 인수 자문을 맡은 모건스탠리는 3위에 올랐다.
회계자문 분야에서는 전통의 강자인 삼일PwC가 23건, 4조 1058억 원의 실적으로 1위를 굳건히 수성했다. 법률자문 부문은 김앤장의 독주 체제가 이어졌다. 김앤장은 28건, 8조 6772억 원의 자문 실적을 올리며 전체 점유율이 46.97%에 달했다. 이어 율촌(2조 6915억 원)이 청호나이스 매각과 KG그룹의 케이카 M&A 자문을 완수하며 2위로 올라섰고 태평양(1조 6133억 원)과 세종(1조 5570억 원)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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