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이 3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으로 기업 지배구조(거버넌스) 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일부 상장사가 이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일부 기업은 이사 임기를 다변화하고 이사 수에 상한을 설정했는데 이런 시도가 소수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가능한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법 개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총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글로벌 기관 투자자 모임인 ICGN과 더불어민주당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2026년 주총 진단 및 향후 과제’ 세미나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올해 주총에서 코스피200 상장사 가운데 사외이사 임기를 연장하거나 이사 수에 상한을 설정하는 정관 변경을 시도한 기업이 각각 10%와 12.5%에 달했다”며 “이는 개정 상법을 형해화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올해 주총에서 한화갤러리아는 이사회 정원을 기존 13명에서 7명으로 줄이는 정관 변경 안건을 처리했다. 기존 이사회 정원이 9명인 오뚜기는 이를 7명으로 줄이는 안건을 상정했다. 올해 9월 10일부터 대규모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의무 시행되는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한 번에 선임하는 이사의 수가 많을수록 소수주주에게 유리해진다.
이사 임기를 다변화해 대응한 기업도 많았다. 삼성SDS는 이사 임기를 기존 ‘3년’에서 ‘3년 이내’로 축소하는 안건을 올렸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재 ‘2년 내’로 명시된 이사 임기를 ‘3년 혹은 3년 내’로 다변화했다. 이사의 임기가 집중돼 있으면 임기 만료 시점에 이사회 공석이 한 번에 여럿 발생하면서 소수주주 등이 주총에서 제안·선임할 수 있는 이사 수가 늘어난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국민연금이 이런 안건에 대체로 반대했지만 ISS 등 해외 의결권자문사들이 대체로 찬성하면서 주총에서 각각 95%와 92%나 가결됐다”고 말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ISS 등 글로벌 의결권자문사의 국내 전문인력 부족으로 의안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찬성 권고가 나오고 있다”며 “해외 다수 기관 투자자가 이를 따르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총 날짜가 집중되는 현상과 주총일에 임박해 안건과 사업보고서를 공개하는 문제가 있다고 봤다. 황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국내 기관투자자는 1주일 안에 수백 개 회사의 안건을 분석해야 하고,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사업·감사보고서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찬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주총 진행에도 문제가 많아 법무부가 가이드라인 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ICGN은 기업 거버넌스를 논의하는 글로벌 투자자 네트워크로 세계 40개국의 300여 개 자산운용사와 기관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이들 기관의 보유자산은 90조 달러(약 13경 5000조 원)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브 와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