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 9일 만인 6일 전격 시행되면서 주요 기업들이 속속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히고 있다. 다수의 상장사는 이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자사주를 전략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사수 작전에도 돌입했다. 자사주를 임직원 보상은 물론 대규모 투자 등에 활용하는 안건을 잇따라 상정하는 것이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068270)은 이달 24일 정기 주총에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 승인 및 소각의 건’을 안건으로 올렸다. 향후 자사주 300만 주는 임직원 보상용으로, 322만여 주는 경영상 목적의 유동화용으로 처분한다는 계획이다. 시가 기준 약 1조 3076억 원 규모다. 셀트리온은 특히 2030년까지 전략적 제휴와 인수합병(M&A), 시설 투자 등을 위해 총 3조 원의 투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면서 연내 자사주 처분만으로 6700억 원 이상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모비스(012330) 역시 이달 16일 주총에서 ‘자기주식 보유 및 처분 계획 승인의 건’을 처리한다. 보유 자사주 약 155만 주(1.71%) 중 50만 주가량을 임직원 성과급 지급 목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 외에도 이마트(139480)·현대해상(001450)·금호건설·코오롱글로벌 등 상장사들이 임직원 성과 보상 목적 등으로 잇따라 자사주 처분 계획 안건을 상정하며 대응 대열에 합류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자사주를 일부라도 사수하려고 속도전에 나서는 것은 3차 상법 개정안이 속전속결 시행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기업들이 기 보유한 자사주를 1년 6개월 안에(내년 9월 5일)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거나 처분하려면 반드시 주총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이번 정기 주총이 자사주가 지닌 전략적 가치를 일부라도 보전하기 위한 기회인 셈이다.
증권업계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달 25일부터 이날까지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기업은 50곳 이상, 규모는 최소 약 24조 원에 달했다. 삼성전자(005930)는 올 상반기 안에 보유 중인 자사주 1억 543만 주 가운데 8700만 주를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시가 기준 16조 원 규모다. SK(034730)도 전날 이사회를 열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4조 8000억 원 상당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한화는 이날 총 5608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이들 3개 회사는 이번 정기 주총에 각각 자사주 처분 계획 안건을 함께 상정해 추후 임직원 성과 지급 목적 등에 자사주를 활용할 뜻도 분명히 했다.
일부 상장사들은 이번 주총에서 자사주를 신사업 투자, M&A, 재무 구조 개선 등의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관 변경안도 잇따라 상정할 계획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포괄적인 경영상 목적으로 계속 보유하려면 반드시 해당 목적을 정관에 근거로 마련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향후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열려 있는 대웅(003090)도 이번 정기 주총에서 자사주를 전략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정관에 새기기로 했다. 이 밖에 롯데지주·CJ(001040)·크래프톤 등도 자사주 처분 근거 마련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이번 정기 주총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자사주 처분 계획 및 정관 변경 안건 마련을 서두르는 것은 자사주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카드이기 때문이다. 문성 법무법인 율촌 기업지배구조센터 변호사는 “자사주 활용이 과거처럼 이사회 재량만으로 결정되기 어려워지고 주주 승인과 시장의 감시도 강화되고 있다”며 “기업들은 자사주 활용의 목적과 주주 가치와의 정합성을 보다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하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시행된 1차 상법 개정에 따른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확대와 관련한 정관 변경 움직임도 분주하다. 이사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에 대해 직접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거액의 소송 제기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역량 있는 사외이사를 영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하소연도 쏟아졌다.
기업들은 이 같은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개정 상법 제400조 제2항을 근거로 대책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회사는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사의 책임을 최근 1년간 보수액의 6배(사외이사 및 독립이사는 3배)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면제할 수 있다. 단 이 내용을 회사 정관에 미리 새겨둔 기업들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기업들이 이번 주총에서 앞다퉈 정관 변경안을 상정하는 것이다.
실제 롯데쇼핑(023530)·티엠씨(217590)·에이스침대(003800) 등 다수 상장사가 이번 주총에서 이사의 손해배상 한도를 제한하는 안건을 상정하고 나섰다. 이사들을 향한 주주들의 소송 리스크 증가에 대비한 포석으로 사외이사들의 심리적·경제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거액의 소송 리스크에 노출된 사외이사들이 위축되지 않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방어막을 쳐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