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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방파제 쌓을 마지막 기회”…이사 수 줄이고 퇴임시점 분산 [시그널]

[상법 개정發 주총전쟁]
<상> 이사회 수성 총력전
오뚜기 등 이사회 정원 축소
분리선출 확대 전 임기 다변화
우호적 감사위원도 선제 확보
거버넌스 개편…불확실성 줄여

  • 이덕연 기자 강동헌 기자 김경택 기자
  • 2026-03-08 17:16
상장사가 밀집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전경. 연합뉴스
상장사가 밀집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전경. 연합뉴스

3월 정기 주주총회가 향후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에 중요한 분기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올해 7월 이후로는 개정 상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즉 내년 정기 주총부터는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합산 3%룰’과 분리 선출 감사위원 확대, 집중투표제 등이 적용돼 최대주주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게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이사회와 감사위원회를 선제적으로 재편하는 등 진입장벽을 최대한 높여 경영권 견제를 최소화하고 소수주주와의 분쟁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8일 투자은행(IB) 업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한화갤러리아는 이달 26일 정기 주총에서 이사회 정원을 기존 13명에서 7명으로 줄이는 정관 변경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기존 이사회 정원이 9명인 오뚜기는 이를 7명으로 줄이는 안건을 상정했다. 법조계에서는 이사회 정원 감축을 집중투표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 올해 9월 10일부터 시행되는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한 번에 선임하는 이사의 수가 많을수록 소수주주에게 유리해진다. 이 때문에 이사 수 상한을 설정해 대응하려는 기업들도 많다.

원혜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정관상 이사의 총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경우 소수주주가 상법상 주주 제안권을 활용해 다수의 이사 선임 안건을 상정하고 여러 명의 이사를 동시에 선출하도록 하는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갤러리아 측은 “한화솔루션 합병 당시 회사 규모에 따라 이사가 늘었다가, 분할되면서 줄어드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사의 임기를 축소하거나 다변화하는 식으로 이사 임기 구조를 재설계하는 안건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삼성SDS는 이번 주총을 앞두고 이사 임기를 기존 3년에서 ‘3년 이내’로 축소하는 안건을 올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재 ‘2년 내’로 명시된 이사 임기를 ‘3년 혹은 3년 내’로 다변화할 예정이다. 이사의 임기가 집중돼 있으면 임기 만료 시점에 이사회 공석이 한 번에 여럿 발생하면서 소수주주 등이 주총에서 제안·선임할 수 있는 이사 수가 늘어난다. 조완희 법무법인 디엘지 대표변호사는 “이사의 퇴임 시점을 분산시키는 것이 선임 이사 수를 줄이고 변수를 최소화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며 “이사회 주도권을 지키는 것이 이번 주총 시즌을 앞둔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지난해 상법 개정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과 이사회·감사위원회의 독립성 강화였다. 이 중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는 지난해 7월 개정 법안 공포와 동시에 시행됐다. 그 외에 상장사 이사회 내 독립이사 비율을 기존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높이는 조항과 분리 선출 감사위원 확대 등은 각각 올해 7월과 9월에 시행돼 정기 주총에서 관련 정관 변경이나 안건을 의결하지 않으면 연중 임시 주총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공포일과 시행일, 최초 적용 주총 사이에 시간차가 존재한 영향이다.

보다 큰 변수는 내년 정기 주총부터 집중투표제를 비롯해 전자 주총을 도입해야 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이 추가로 제한되는 합산 3%룰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다.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 등이 소유한 주식을 합산하지 않고 각각 3%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개별 3%룰’과 달리 합산 3%룰에서는 모두 합해 3%까지밖에 행사하지 못한다. 이들 제도가 결합되면 최대주주 측 감사위원을 선임시킬 가능성은 줄어들고 소수주주나 행동주의 펀드 측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은 대폭 커진다.

즉 올 7월 전에 분리 선출 감사위원을 선임해야 최대주주 측의 의결권이 상대적으로 더 많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마트·롯데쇼핑 등도 이번 주총에서 신규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할 계획이다. 배기완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경영권분쟁대응센터장)는 “올해 정기 주총이 대주주가 최대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합산 3%룰 적용 시 우호 지분이 어떻게 산정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기업들에서는 미리 기업 사정에 밝은 전문가나 우호 인력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하려는 모습이 포착됐다. 현대백화점은 전임 유통학회장이자 차기 마케팅학회장인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한화갤러리아와 BGF리테일은 기존 사외이사로 회사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송지혜 마녀공장 대표와 신현상 한양대 교수를 각각 감사위원에 선임할 예정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주총을 앞둔 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상법 개정의 취지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이는 것인데 이를 역행한다는 이유에서다. 남양유업 상근감사 출신의 심혜섭 변호사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이 개정된 것인데 감사위원회 정원 확대나 이사 임기 분산 등은 개정 취지와는 맞지 않는 편법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기업들이 지배주주나 경영진에 반대하지 않는 이사를 찾는 데만 몰두하는 측면이 있다”며 “기업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이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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