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이 한국산업은행 출신 사외이사가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에 일감을 맡겨 국민연금이 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HMM의 경우 산업은행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려운데 해당 인사가 고문으로 있는 로펌에서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은 이해충돌이라는 것이다.
27일 산은에 따르면 정용석 전 산은 부행장은 2024년 3월부터 HMM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정 전 부행장은 산은에서 구조조정 업무를 도맡아 해온 인물이다. 금호그룹과 STX, 동부,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2016년부터 2017년 말까지는 구조조정 부문 부행장을 맡았다. HMM의 경우 2016년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 관리체제로 들어간 뒤부터 산은의 관리를 받고 있다.
문제는 정 전 부행장이 현재 김앤장의 고문이라는 점이다. 김앤장 고문이면서 HMM 사외이사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에서 김앤장이 HMM의 사건을 수임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한 법률 자문 등을 해주는 것은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다는 게 국민연금의 판단이다. 연금 측은 올해 3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정 전 부행장의 재선임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의 사정에 정통한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이 HMM 측에 지배구조에 관한 요구를 하면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며 “HMM의 최대주주인 산은 출신이 사외이사로 와 있는 상황에서 본인이 몸담고 있는 로펌에 회사 용역이 나가는 게 맞느냐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을 다하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8월 HMM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했다. 일반 투자 단계에서는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 요구 등 적극적인 주주 활동이 가능하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국민연금의 HMM 보유 지분율은 5.62%로 5%를 웃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정 전 부행장의 첫 임명 때도 반대를 했던 것으로 안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산은의 구조조정 기업이나 거래 업체에 재취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규모 분식회계가 벌어졌던 옛 대우조선해양에서는 2009년부터 간접 관리를 이유로 산은 출신들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줄줄이 꿰차기도 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했던 금융사 임원이 퇴직 후 기업의 사외이사나 임원으로 가는 일은 근절돼야 한다”며 “낙하산이 있어야만 경영 협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산은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은의 관계자는 “퇴직한 지 오래됐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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