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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옥석가리기' 본격화...조달시장 침체→자금경색 심화 악순환 오나

<비우량기업 자금조달 비상등>
'BBB' 대한항공마저 미달
A급까지 부진 전이 가능성
'자금 양극화' 더 심해질수도

  • 박호현 기자
  • 2019-07-21 14:27:37
[시그널] 회사채 '옥석가리기' 본격화...조달시장 침체→자금경색 심화 악순환 오나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BBB급 회사채(공모)는 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이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놓으면 수요가 몰리면서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BBB급 회사채 발행잔액은 자연스럽게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올 상반기 기준 BBB+ 이하 비우량 회사채는 2조3,810억원 발행돼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수요가 많아 유통금리(BBB+ 기준)도 5.8%에서 5.2% 선까지 낮아졌다.

넘치는 수요에 발행물량도 계획보다 늘리곤 했다. 한진(BBB+)은 상반기에만도 회사채를 두 번 찍어 1,6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고 AJ네트웍스(BBB+)도 지난 5월 500억원 모집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2,090억원가량의 주문을 받았다. 대한항공(003490)(BBB+) 역시 4월 2,000억원 회사채 공모에서 4,890억원이 유입돼 발행금액을 3,000억원까지 확대했다.

그랬던 BBB급 회사채 시장이 싸늘하게 식고 있다. 금리 탓도 있지만 경기침체 등의 영향이 더 크다. 갈수록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성장률을 낮추면서 기준금리도 전격 인하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대상은 확대될 가능성이 크고 기업들의 실적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항공의 회사채 미달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회사채 시장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돼 비우량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21일 “대한항공 3년물의 경우 1,700억원 모집에 640억원밖에 수요가 없었다는 점은 충격적인 신호로 읽힌다”면서 “회사채에 대해 옥석을 가리겠다는 의미인데 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경우 자금조달이 경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대한항공만 놓고 보면 금리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19일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희망금리를 민간 채권평가사들의 시가평가금리(민평금리) 수준에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한항공의 2·3년 민평금리는 각각 2.952%, 3.376%다. 4월만 해도 투자자들에게 2년물 연 3.45%, 3년물 3.97%의 금리를 제시했으나 불과 석 달 만에 50bp(1bp=0.01%포인트) 이상 금리를 내려 판매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BBB급 회사채 미달이 연이어 발생한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한진이 12일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610억원의 기관수요만 받아 올해 처음으로 공모채 미매각을 기록했고 AJ네트웍스도 16일 600억원을 모집했지만 630억원만 주문이 들어오는 데 그쳤다. 시장에서는 대한항공은 다를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지만 무려 1,750억원에 달하는 미매각을 냈다. 기업에 대한 시각이 그만큼 차가워졌다는 얘기다.

[시그널] 회사채 '옥석가리기' 본격화...조달시장 침체→자금경색 심화 악순환 오나

IB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현대차 같은 간판 기업들이 모두 어려운데 다른 기업들은 더 어렵지 않겠느냐는 기본적인 심리가 있다”며 “BBB급을 시작으로 A급(A-~A+) 기업들로 수요 부진이 전이될 경우 기업들의 전반적인 자금 사정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하반기로 가면서 투자자들의 북클로징(장부 마감)으로 자연스럽게 회사채 투자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AA급 이상 우량기업 회사채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탄탄해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 간 자금조달 양극화도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아직 AA급 회사채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지만 BBB급 회사채는 호황에서 꺾이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며 “하반기 기관수요가 줄면 BBB급 금리가 다시 올라가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국내 주요 기업 실적 악화로 신용등급 하향세까지 겹쳐 앞으로 더 비싼 금리를 물어야 하는 우려도 있다. 기업에 재무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실제 최근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기아자동차의 신용등급을 BBB+로 한 단계 하향했다. S&P는 SK텔레콤·SK하이닉스·LG화학·이마트의 등급 전망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무디스 역시 이마트와 KCC를 Baa2에서 최근 Baa3로 내렸다.

국내 신용평가사도 같은 행보를 보였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롯데쇼핑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LG디스플레이도 AA에서 AA-로, 두산중공업은 BBB+에서 BBB로 낮췄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도 국내 주요 기업의 전망을 대거 내렸다. 상반기 신용등급이 내려간 기업은 40곳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신용평가사의 한 연구원은 “국내 경기가 반등할 기미가 없다”며 “국내 기업들의 실적도 악화되며 신용위험 역시 점점 커지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신용등급 하락은 결국 자금조달을 더 어렵게 만든다. 19일 끝난 대한항공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도 일부 기관투자가는 3년물에 대해 기존 민평금리 대비 20bp(1bp=0.01%p)나 높은 금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금리로는 자금조달이 어렵다는 뜻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세에다 시장의 경계감 확대로 일부 비우량기업의 자금확보가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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